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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엄마의 작은 변화



2주 전에 있던 일이다.
엄마가 갑자기 좀 있다 냉장고 정리를 할 건데 도와달라고 하셨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모두 다 버려버릴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믿지 않았다. 왠일인가 싶었다. 엄마가??
어차피 몇 시간 뒤 귀찮아서 안 한다고 말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였다.

역시 몇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냉장고 정리를 하려는 기미가 안 보이시길래

역시..라고 생각하면서 엄마에게 떠보았다.
"엄마, 냉장고 정리 안해?"
엄마는 누워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안할래."
속으로 '역시..'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 뒤 슬쩍 냉장고 청소 언제할거냐고 '도와줄까?' 하며 지금 냉장고 가서 음식 다 꺼낸다고 말했다.
엄마는 무슨 다 꺼내냐고 칸마다 꺼내서 정리하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 제대로 정리 안된다고
다 꺼내놓고 해야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도 되고

비울 것도 확실히 눈에 보이면서 정리가 제대로 된다고 하며

직접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모두 꺼내놓았다.
엄마가 부엌으로 오셨다.
우리는 모든 음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된 음식, 잘 안 먹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냉장고 선반을 닦아냈다.
엄마는 매우 청결하시고 냉장고 청소도 주기적으로 하시기에 냉장고 안은 깨끗했으나
각종 여러가지 음식들이 빼곡하고 촘촘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냉장고 안에 있던 것들을 나열해보자면
우리 가족들 건강을 위해서 손수 만든 여러 가지의 각종 엄청난 양의 가루들.. 하지만 가족들은 먹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 만든 여러 좋은 여러가지를 넣고 만든 꿀도라지어쩌고청.. 만들고 몇번 먹었지만 지금은 먹지 않는다. 엄마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계셨다. 양이 너무 많다. 너무 익었다고 할까. 하얀 곰팡이가 활짝 펴있었다.
너무 많이 있는데 빨리 소진하지 못해 물러터진 야채들.. 빠이.
냉장고엔 있지 않지만 작년에 밥 안먹고 미숫가루 타 먹으면 살빠질 거라고 만들었는데, 너무나도 많이 만들어서 먹지 않는 한 통을 버렸다. 먹어도 먹어도 티가 나질 않는다. 그리고 맛이 없다. 텁텁하다. 손이 안간다. 현재는 아무도 안 먹는다, 엄마도.

버릴 음식들 한 통을 가득채워 버렸다. 많은 버릴 봉지들과 쓰레기들이 생겼다.
다 정리 후 엄마는 매우 개운해하셨다.
많이 버렸지만, 엄마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다 버려지진 않고, 많이 냉장고에 다시 들어갔지만, 차곡차곡 보기 좋게 정리를 잘 해놓았다. 나도 기분이 상쾌하다.
각종 크기의 냄비들이 즐비한 선반을 가르키시며 조만간 여기도 다 털어버리겠다고 하셨다.
언제 하실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엄마가 무언가를 비우시는 행동을 조금씩 해나가신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좋다.
우리 집에 불필요하고 사용량에 훨씬 벗어나는 것들이 어서 계속 비워졌으면 좋겠다.